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오도시우스 1세 (문단 편집) === 내력과 초기 === 지금의 [[스페인]]에 소재한 코카(Coca) - 당시에는 카우카(Cauca)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통칭 [[대 테오도시우스|테오도시우스 백작]](Count Theodosius, 신의 아버지 테오도시우스로 [[추존]])으로 불리는 서로마 제국의 장군으로,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최측근 무장이었다. 대제를 다룬 고대 기록들은 테오도시우스 일가가 로마 제국 최초의 히스파니아 지방 출신 황제 [[트라야누스]]와 관련 있는 듯 교묘하게 묘사하고 있고, 그 일가가 대대로 오늘날의 [[세비야]] 지방 내 로마 식민도시 이탈리카 일대를 지배한 지역 유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현대 학자들의 연구들에 따르면, 테오도시우스 1세 일가는 히스파니아 토착민들로 트라야누스 황제처럼 그 일가가 이탈리아에서 히스파니아로 이주한 로마인도 아니며, 집안에서 가지고 있었다는 카우카와 이탈리카 일대의 토지들도 부친이 군에 복무하면서 받은 봉토였다고 한다. 당연한 말인데 테오도시우스 1세는 제위에 오른 이후, 자신의 출신지인 이베리아 반도를 찾거나 그곳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테오도시우스 1세의 집안은 부친 시절부터 제국의 핵심이 된 신흥 가문인데다, 대제 역시 즉위 전까지는 전형적인 직업군인장교였다. 따라서 고대 기록 내용처럼 그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훌륭한 가정교사들에게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성장 과정 역시 동세대의 지주나 유지 일가 자제들과 차이가 있었다. 여러 학자들은 테오도시우스가 직업군인의 아들들이 대개 그렇듯, 아버지가 복무한 부대를 돌아다니며 군업무를 배웠다고 말한다. 즉, 혈통과 고향이 이베리아 반도였을 뿐 부친이 근무한 주둔지를 돌아다니며 세습 직업군인장교 수업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테오도시우스 1세는 비슷한 나이대의 원로원 의원들과 달리 샌님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368년, 브리타니아 일대가 색슨 족과 스콧 족 등의 만족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위기에 처하자[*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대음모(Great Conspiracy)라고 부른다. 소설 "[[눈 속의 독수리]]"에서 이 시기를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 테오도시우스 장군과 함께 출전, 약관의 나이에 공을 세우고 374년에 모이시아의 장관(Dux)으로 부임하여 도나우 강 북쪽의 [[고트족]]과 [[반달족]]을 무마하는 등, 순조로운 커리어를 쌓았지만 아버지 테오도시우스 장군이 시기하는 자들에 의해 반역죄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처형되면서 군에서 물러나 고향 스페인으로 돌아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